책과 심리

[그림서평] 아니 에르노의 "빈 옷장" 한 여성의 삶과 기억의 흔적 본문

10분에 책 한권 읽기

[그림서평] 아니 에르노의 "빈 옷장" 한 여성의 삶과 기억의 흔적

서필(Sofil) 2025. 1. 16. 06:00
 
빈 옷장
‘기억에 대한 주관적인 시선’은 있을 수 있겠으나, 거짓과 허구는 없는 그녀의 글쓰기. 데뷔작 〈빈 옷장〉은 그러한 '아니 에르노라는 문학'의 시초이다. 첫 작품부터 날 것 그대로의 문장으로 스무 살의 자신이 받은 불법 낙태 수술에서 출발하여, 환경에 적응하며 사는 어린 시절을 거쳐 사춘기 시절의 상처, 가족에게 느끼는 수치심, 자신의 뿌리를 잊기 위한 노력과 부르주아층 남자아이에게 버림받은 일까지, 자신이 속한 세상에서 분리되는 과정을 그리며 그러한
저자
아니 에르노
출판
1984BOOKS
출판일
2020.05.25

 

안녕하세요. 서필입니다.

오늘은 2022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아니 에르노의 데뷔작 '빈 옷장'을 소개해드릴게요.

 

 



[서평]

"옷장 속에서 발견한 계급과 모성의 이야기"

 

아니 에르노의 『빈 옷장』은 사소한 일상의 물건을 통해 거대한 사회적 의미를 끌어내는 작가의 탁월한 관찰력이 돋보이는 작품이에요. 옷장이라는 평범한 소재를 통해 계급, 젠더, 그리고 세대 간의 복잡한 관계를 섬세하게 포착해내죠.

작가는 어머니의 옷장을 정리하는 행위를 단순한 추억의 회상이 아닌, 프랑스 사회의 계급 구조를 해부하는 도구로 활용해요. 각각의 옷은 단순한 의복이 아닌, 한 여성의 삶과 시대의 변화를 증언하는 역사적 기록물이 되는 거죠.

특히 인상적인 것은 어머니의 옷장에서 발견되는 이중성이에요. 노동자 계급 출신임을 감추고 싶어하면서도 그 뿌리를 완전히 지우지 못하는 어머니의 내면이, 옷장 속 서로 다른 스타일의 옷들을 통해 상징적으로 드러나요.

작가는 어머니의 옷장을 들여다보며 자신의 정체성도 함께 탐구해요. 계급 이동을 경험한 어머니를 바라보는 딸의 시선에는 연민과 이해, 그리고 비판적 거리두기가 공존하고 있죠.

이 작품의 독특한 점은 지극히 사적인 경험을 통해 보편적인 사회 문제를 다룬다는 거예요. 한 여성의 옷장이라는 사적인 공간이 프랑스 사회의 계급 문제와 여성의 지위 변화를 보여주는 렌즈가 되는 거죠.

무엇보다 아니 에르노는 감정에 빠지지 않고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어머니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애정을 섬세하게 표현해내요. 이는 작가 특유의 '평평한 글쓰기' 스타일이 빛을 발하는 지점이기도 하죠.

또한 이 책은 세대 간의 단절과 소통에 대해서도 깊이 있게 다뤄요. 옷장 정리라는 행위를 통해 어머니의 삶을 재구성하고 이해하려 노력하는 과정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하죠.

사회학적 관찰과 문학적 서술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이 작품은, 한 여성의 삶을 통해 본 20세기 후반 프랑스 사회의 자화상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마지막으로, 이 책은 우리에게 물건이 가진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해요. 옷장 속 먼지 쌓인 옷들이 한 인간의 삶과 시대의 흐름을 고스란히 담아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일상적 사물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죠.